1. <아리랑> 줄거리
어느 마을에 광인인 주인공 영진이 있었습니다. 영진은 그의 아버지와 여동생 영희에게 광인 특유의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영진의 친구 현구가 찾아옵니다. 현구는 다정하고 똑똑했던 영진이 폐인이 된 모습을 보며 너무나도 가슴 아파했습니다. 영진이를 대신하여 동생 영희가 현구를 맞이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구와 영희는 어느새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마을 악덕 지주의 청지기 오기호가 영희에게 흑심을 품고 자주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농악이 흥겹게 들리는 동리 마당에 모입니다. 사람들이 한곳에 몰린 틈을 이용해 오기호는 영진이의 집으로 몰래 들어가 영희를 겁탈하려고 했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 모습을 보게 된 영진은 오히려 박수를 치면서 좋아합니다. 광인인 영진에게는 이 모습이 마치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들의 사랑놀이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영희를 사랑하는 현구가 등장하게 됩니다. 현구와 오기호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싸우는 두 남자와 쓰러지게 된 영희,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흥겨운 농악이 흐르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영진은 옆에 있던 낫을 집어 들고 휘두르게 됩니다. 빨간 피를 흘리며 오기호는 쓰러지게 됩니다. 영진은 오기호가 흘리는 빨간 피를 보며 충격에 빠지고 이를 계기로 다시 예전의 제정신인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끝내 오기호는 숨을 거두게 되고 살인범이 되어버린 영진은 쇠고랑을 찬 채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며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게 됩니다.
2. <아리랑>에 관한 이야기들
일제강점기인 1926년 국내에서 처음 상영된 무성 영화로 한국 영화의 시작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연, 감독, 제작자이며 각본을 쓴 나운규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조선 키네마 주식회사를 통해 영화계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주연 배우들을 제외하고도 800여 명의 엑스트라가 참여한 작품입니다.
나운규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며 수감된 적도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들이 이 작품 속에서 민족주의의 형태로 반영되었습니다. 첫 장면에서 '개와 고양이'라는 자막과 두 마리의 동물이 다투는 장면을 도입하여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을 은유하였습니다. 친일파이자 악덕 지주의 하수인이 악역인 점과 이러한 인물을 살해하는 장면에도 당시 시대 상황에 저항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일본을 암시하는 악역을 없애는 영진을 미치광이로 설정한 것은 당시의 일본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영진이 절규하는 모습과 영진의 미쳐있었던 상태에 관한 설정을 생각해 보면 일제강점기에는 미치광이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시대임을 암시합니다.
상영 당시에 큰 흥행을 하게 되고 1927년에는 일본에서도 개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 이후 나운규는 <아리랑>만큼의 성공을 이루지 못했고 재정난과 그 외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주제가로 사용된 아리랑도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고 한국의 민족 정서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한국 국민들 대다수가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데 흔히 불리는 '십 리도 못가 발병 난다'라는 가사의 아리랑은 전통 민요가 아닙니다. 바로 나운규가 창작한 이 노래가 전통 민요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작품 후에 <아리랑 후편>, <아리랑 제3편>이 있지만 이 영화들도 필름과 관련 자료 모두가 소실되었습니다.
특히나 <아리랑 제3편>의 경우 폐병에 고통받던 나운규가 재기의 기회로 삼아 조선 최초의 유성영화로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촬영이 너무 오래 걸리게 되면서 이명우의 <춘향전>에게 조선 최초의 유성영화라는 타이틀을 빼앗기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아리랑 제3편>은 흥행에도 실패하고 평단에서도 많은 혹평을 받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3. <아리랑> 후기
1926년에 개봉된 <아리랑>은 소실되어 1957년의 리메이크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스튜디오 시스템이라든지 그 외 영화와 관련된 시스템이 없었던 어려운 상황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작품은 단순한 영화라기보다는 민족의 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의 도전정신과 어려운 현실에 저항하는 정신이 뿌리가 되어 현재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콘텐츠로서 한국의 영화가 존재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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